다우트 2차 수정본 :) <다우트>

인간이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본능적인 행위이다. 이러한 인간의 자기보호본능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우선 날씨가 추워지면 사람들이 따뜻한 옷을 찾아 입는 것과 같은 신체적인 반응을 예로 들 수 있다. 나아가 이것이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이었는지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로 무의식적이고 관념적인 것까지, 인간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우리가 살펴 본 영화 ‘다우트’속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자기보호본능의 모습을 ‘의심’이라는 형태로 보여준다. 여기서 영화 속 ‘의심’이란 알로이시스 수녀가 플린 신부에 대해 갖는 생각, 즉 신부가 학생과 부적절한 관계에 있다는 생각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수녀의 의심은 그것이 진실인지를 보장할 만한 확실한 증거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알로이시스 수녀는 확실한 증거조차 없이 신부를 의심할 수 있었을까?

영화를 보면 알로이시스 수녀는 자신과 타인에게 엄격하고 규율을 중시하는 캐릭터로, 플린 신부는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캐릭터로 묘사된다. 가령 커피를 마시는 모습에서도 수녀는 성직자가 쾌락을 즐길 수 없다며 설탕을 넣어 마시지 않는 반면, 신부는 단 것을 좋아하며 이것은 잘못이 아니라는 입장에서 설탕을 넣어 마신다. 이렇듯 작은 것에도 사고와 가치관이 다른 둘은 서로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특히 알로이시스 수녀는 자신과 다른 사고를 지닌 플린 신부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에 대한 불편함을 더욱 강하게 느끼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알로이시스 수녀가 플린 신부에게 느끼는 거부감은 그녀의 사고 속에서 자신의 사고방식을 지켜야 한다는 신호로서 나타난 것이다. 더욱이 수녀는 플린 신부의 가치관이 자신이 통제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보며 자신의 가치관이 학교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불안감마저 느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녀는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플린 신부의 모든 행동을 주시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플린 신부가 그의 사물함에 학생의 내의를 넣는 것을 발견한다. 플린 신부는 그것이 한 학생의 작은 잘못을 가려주기 위해 한 행동이라고 하지만, 알로이시스 수녀는 이를 믿지 않고 학생에 대한 그의 호의를 학생과의 부적절한 관계에서 오는 행동이라고 단정 짓고 신부의 부정함을 ‘의심’하게 된다. 결국 수녀가 확실한 증거 없이 신부를 ‘의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자신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자기 방어의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의 마지막에서 알로이시스 수녀는 플린신부에 대한 자신의 의심을 회의한다. 하지만 이것은 신부의 부정에 대한 자신의 의심 자체를 회의하는 것이라고 보기엔 어렵다. 이는 수녀의 의심이 자신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행위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것이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수녀가 왜 마지막에 신부에 대한 자신의 의심을 회의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에 대해 알로이시스 수녀가 자신의 ‘의심’을 ‘사실’로 만들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 즉 ‘거짓말’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수녀는 플린 신부의 부정함을 캐묻는 과정에서 플린 신부의 전 교구에서 있었던 부정을 알고 있다는 듯한 언급을 하며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전 교구 수녀에게 전화를 하겠다는 말을 한다. 플린 신부는 결정적으로 이 말에 의해 다른 교구로 가겠다는 결심을 한다. 결국 플린 신부는 다른 교구로 가게 되지만 알로이시스 수녀가 플린 신부의 전 교구에서 있었던 일을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곳의 수녀와 전화를 하겠다는 말들이 거짓말이었음이 밝혀진다. 즉, 알로이시스 수녀는 플린 신부에 대한 자신의 ‘의심’을 확신하면서도, 그 의심을 ‘사실’로 만든 ‘거짓말’이라는 방법이 수녀라는 자신의 직분에 어긋나게 되면서 ‘죄책감’에 회의를 하는 것이다.

결국 ‘의심’은 그것이 아무리 본능적이고 자기보호의 성격을 지닌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의심’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 의심의 대상이었던 타인에게 커다란 상처를 입힐 것이며, ‘의심’을 밝혀내는 과정이 부당하다면 이는 자신의 ‘의심’마저 위태롭게 할 것이다. 영화 속 알로이시스 수녀의 '의심'은 그것의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다. 따라서 그녀의 '의심'이 자기 보호의 기제로서 인정될 수 있는 것은 그 '의심'의 증명 과정이 정당했을 때 이다. 그러나 '의심'이 온전히 자기 보호의 기제로서 인정될 수 있는 것은 그 '의심'이 사실이었을 경우마저 포함했을 때 일 것이다. 자기 보호를 위한 ‘의심’이 부메랑이 되어 나와 타인을 공격하는 ‘의심’이 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기 방어적 기제로서의 ‘의심’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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